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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리뷰♥/책읽기 2010. 3. 28. 18:06
오히라 미쓰요 지음 · 양윤옥 옮김
북하우스.
중학교 시절. 전학 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미쓰요.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더욱더 나빠져만 갔다. 그런 미쓰요는 유서를 남겨두고 아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할복자살을 기도한다. 자살은 실패로 돌아간다. 미쓰요는 다시 그 학교로 돌아오게 되고 아이들을 비롯한 선생님, 부모님까지도 전과 다름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미쓰요는 '비행'을 결심하고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며 가출까지 일삼는다. 하지만 한 친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녀 자신이 그 어느 곳에서도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걸 깨닫는다. 그녀는 더욱더 방황하게 되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야쿠자 보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 그녀는 조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등에 문신을 새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또 한번의 후회를 하고 남편과 이혼을 한다. 그후 그녀는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지내다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 줄 사람과 만나게 된다. 바로 아버지의 친구였던 오히라 히로사부로 씨. 그와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녀는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아보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공인중개사 시험, 사법서사 시험 그리고 사법고시. 그리고 그녀는 결국 변호사가 되어 비행청소년들을 담당하며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자 노력한다.
트와일라잇을 읽다보면 뉴문(트와일라잇 제 2권)에서 이런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에드워드가 벨라를 위해 그녀를 모질게 떠난 후부터 벨라가 그의 이름을 말하기만 해도 느끼는 고통, 숨막힘 같은 것들. 요즘들어 그런 느낌을 부쩍 받았었다. 나를 둘러싼 숨막히는 무거움. 입밖에 내기도 두려웠던,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을 짓누르던. 그래서 줄곧 '죽음'이라는 것을 비밀스럽게 떠올려봤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죽을 수조차 없이 내가 살아야 하는, 그래야만 하는 구차한 이유를 생각해내곤 했다. 삶으로써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가치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두렵도록 까만 밤을 견디었다. 그런 상태에 있던 나에게 이 제목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아니 벅찼는지도.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이미 풍부해질대로 풍부해진 내 감수성을 있는 대로 들쑤셔놓았으니까. 용산에서 여수로 향하는 무궁화열차 5호차 28번 자리에 앉아 미쓰요에 자신을 한없이 대입해가며 눈물을 뚝뚝흘리고 말았으니까.
오히라 미쓰요. 그녀가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처지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내 슬픔이 가장 큰 것처럼 여겨왔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지만 무의식은 그 명백한 두려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의 고통이 그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 어리석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왕따시키는 편이었고, 잠시 비행 비슷한 것을 저지르다가 관뒀으며, 가출 계획도 워낙 오지에 사는 탓에 실패하고 말았다. 내 친구들은 미쓰요의 그들만큼 처절하게 날 외롭게 만들거나 배신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쏟아지는 기대를 져버릴 만큼 난 대담하지 못했다. 비록 내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지라도. 이런 사실들에, 나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는 일 뿐이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내가 과연 그녀만큼 괴로웠을까를 생각해보게 됐다. 미쓰요,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처럼 내 곁에도 그런 분들이 있는 것을 요즘들어 느낀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빅터프랭클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선택'의 자유를 모든 인간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쓰요 역시 그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록 그녀에게 닥친 상황은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 대한 태도만큼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던가. 그런 부분에 대해 그녀는 너무 다른 사람 탓만을 하며 인생을 허비해버렸다. 나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다. 나는 오히려 더 나쁜 선택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려고 하지 않았고, 아니 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지쳐있었다. 그렇다고 미쓰요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 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난 혼자만의 우물에 깊이 빠져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우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다시 선택해보려고 한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인생에 대해서.
나는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미 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죽일 듯 증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움을 그치지 못하는 나를. 이런 나만 아는 죄를 안고 살아가는 것도 나에겐 벅찬데, 이를 넘어선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져버리는, 그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서 나중에 그것을 안고 살아갈 자신이 내게는 없다. 해보자. 오히라 미쓰요가 보여준 '인간의 가능성'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얼마만큼 충실했던가. 돌이켜보면 초라할 뿐이다. 못다한 힘까지 모두 모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볼 것이다.나는 아프면 안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프다 소리도 하면 안되는 그런 사람. 나다운 것, 이따위 것에 매달려 울고 싶어도 웃었다. 하지만 아프기만 한, 아파보이기만 한 사람보단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하게 됐다. 오늘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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